알라리깡숑 - 사자를 보러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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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를 맞으며 큰 나무는
    생각보다 따뜻하게 자랐어
    미안한 마음에 속삭이면
    굳이 큰 소리로 말을 건네던

     

    오랜만에 너의 꿈을 꾸게 된다면
    잠시나마 좋을텐데
    이불 위로 불어오는 바람처럼
    숨죽인 시간에

     

    이젠 또 내려 가지마
    언덕 위의 사자를 보러 가자
    그대 또 떠나 가지마
    그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보면 쉬울텐데

     

    오래 간직해온 미소가
    아직 내겐 어울리지 않아
    미안한 마음에 다그치면
    땅을 파던 너는 나를 보면

     

    오랜만에 나도 꿈을 꾸게 된다면
    잠시나마 좋을텐데
    이불 위로 불어 오는 바람처럼
    숨죽인 시간에

     

    이젠 또 내려 가지마
    언덕 위의 사자를 보러 가자
    그대 또 떠나 가지마
    그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보면 쉬울텐데

     

    겨누워진 총구를 향해
    달려가는 이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보면

     

    이젠 또 내려 가지마
    언덕 위의 사자를 보러 가자
    그대 또 떠나 가지마
    그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보면 쉬울텐데

    낭만과 감성의 규격화로 현대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

    감성. 한국어 중 가장 싫어하는 단어다.

     

    비일상적인 경험과 공간에 대한 수요가 많아진다. 독특하고 훌륭한 공간에 커피와 식사를 판다. 거기에 붙는 미사여구, 마케팅 용어로 '감성'이 붙는다. 감성이야 말로 인류가 가진 가장 고등하고 진보한 특성이자 각 개인의 정체성과 깊이 연관된 단어인데, 다수가 공유하는 상업적인 공간에 붙는다. 감성의 영역이 점점 좁아지고, 감성에도 주류가 생긴다. 자유로운 타인의 감성에 사회적 린치를 가하는 감성나치들도 등장한다. 모두가 똑같아지고 모두가 같은 것을 원하게 된다. 

     

    좁은 땅덩어리에 발에 채이는게 사람이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사는게 점점 더 심해진다. 경쟁이 치열해지니 지치고 낙오되는 사람들이 생긴다. 모두가 가진 목표지향점이 한 곳으로 수렴하니 무자비한 경쟁의 테이블링 대기줄에 이름을 넣는다. 평균의 기준치가 상위 25%로 올라간다.  성공하는 사람은 적어지고 실패하는 사람은 늘어난다. 대낮부터 칼부림을 하고,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많아진다. 사고를 치지않는 사람들은 자존심과 멘탈에 큰 내상을 입고 은둔하거나,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언덕 위의 사자를 보러가자'

    모두가 비슷한 삶을 원하고 얼마 안되는 그 자리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성공과 실패는 상대적이라, 누군가는 실패를 반드시 맛본다. 하지만 실패한 사람을 짓밟고 무시하기 보다, 알라리깡숑은 응원을 건넸다.

    내려가는 누군가에게 위엄과 성공과 낭만의 상징인 '사자를 보러가자'며 언젠가 저 사자처럼 되기를 바란다.
    '비를 맞으며 큰 나무는 따뜻하게 자랐다'며 고생한 시간이 큰 의미가 있을거라고 위로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백수의 왕은 불법 사설농장을 탈출해 '겨누어진 총구를 향해 달려간다'

     

    https://yna.co.kr/view/AKR20230814016600053

    올해 여름에 고령에서 암사자 탈출 소동이 있었다. 불법 목장에서 사육당하던 사자가 목장을 탈출해 목장 인근 풀숲에서 비쩍 꼴은 모습으로 짧은 자유를 누리다 사살당했다. 이 노래가 문득 생각이 났다.

     

    모두가 되고 싶어하는 사자는 초원을 호령하는 백수의 왕이지, 당연하지만 주어지지 않았던 자유를 초라하게 즐기다 사라지는 사자는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백수의 왕은 대한민국에서는... 불뿜는 지팡이 한방에 끝난다. 

     

    아니 사실은, 사자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목표가 사실은 지저분하고 척박한 불법 사설농장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소름끼쳤다. 우리가 정말 '사자'라고 부르는 것들은 도시 바깥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2023년 8월 26일에 불광천 인근 카페에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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